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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어린 나, 세상과 마주하다.

 

 불과 3~4년 전, 난 세상에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어. 또한, 세상 어딘가에 분명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도 했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분명 어렸을 때부터 봤던, 수많은 동기부여 영상들과 청춘 영상들로부터 학습된 걸거야. 왜 그런 영상들하고 책들 많잖아. 희망적이고 도전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들 말이야.


 "여러분 도전하십쇼. 20대인 여러분들이 지금 부양해야하는 가족이 있는 것도, 돈이 많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이 바로 도전할 때입니다. 세계로 나가십쇼."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세요. 이 세상 어딘가에 여러분과 꼭 맞는, 여러분들의 가슴을 뛰게 할 그런 일이 분명 있지 않겠습니까? 포기하지 말고 꼭 찾으세요."

 

 이런 말들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 당시 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었어. 어느정도냐고? 세계적인 서비스들 몇가지만 생각해볼래? 아마존(Amazon), 애플(App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등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을거야. 난 마음만 먹으면 이런 서비스를 만드는 건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었지. 이 서비스들을 성공적인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들어간 수많은 노력들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없이 말이야.


 그 당시에 내가 이렇게 의기양양 할 수 있었던 건 사실 또다른 이유도 있었어. 군 생활을 할 때 인생 처음으로 시도해 본 프로젝트의 결과가 꽤나 성공적이었거든. 후에 기회가 된다면 이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도 자세히 해 보고싶네. 모쪼록 군에서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기세가 아주 하늘을 찌를 정도였지. 그런 상태에서 각종 청춘 영상, 동기부여 영상, CEO 연설 등을 많이 봤으니... 내가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지.


 얘기를 계속 하자면, 나는 전역하고 나서 곧바로 학교에 복학을 했어. 고등학교 때 성적에 맞춰서 지원했던 무역학과라 그런지 수업이 정말 재미없었어. 적성에도 전혀 안맞고. 학교에 왜 다니나 싶었지. 특히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어. 힘든 거 다 참아가면서 자식생각만 하는 부모님이니까. 


 결국 전공도 너무 싫었고 비전도 보이지 않아 난 1년간 휴학을 하기로 결심했어. 휴학하는 기간 동안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내 힘으로 해보자는 결심과 함께. 자신감이 충만하니 뭐든 되지 않겠어? 라는 생각을 품고 말이야.




#인도여행, 자금마련


 처음 휴학하고 나서 갔던 곳은 공사장이었어. 수원에 있는 삼성 대규모 공사단지였는데, 나는 전기 배선을 담당하는 하청업체의 알바생으로 들어갔지. 목적은 인도여행 자금 마련이었어. 뜬금 없이 인도여행 얘기가 왜 나왔나 싶겠지만, 난 학교와 더불어 이 사회가 과연 옳은 걸까 라는 물음을 항상 가져왔어. 뭣 같잖아. 하고 싶지도 잘 하지도 않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게. 떠나고 싶었던거지.


 어떻게 살면 인생을 올바르게 살 수 있을지 항상 고민했는데, 그 때 나온 답은 '더 넓은 세상을 보자' 라는 거였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체계 등을 접하면 보는 시야가 좀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 뜬금 없지만 인도가 가고 싶어졌어. 긴 ~ 기간 동안 인도를 여행하고 싶었어. 그러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했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던 그 때였어.


 때마침 평소 아는 형으로부터 공사장에서 자기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연락이 왔던 거지. 그렇게 공사장에 들어가게 됐어.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겠지만 인생에 한 번쯤은 그런 곳에서 일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흔쾌히 들어갔어.


 지금껏 살면서 중간중간 알바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참 편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공사장 생활은 상상 이상이었어. 2개월 동안 공사장 주변 숙소에서 숙박하면서 일을 했었거든. 팀 구성원은 나까지 10명이었고, 약 50평 정도 되는 아파트에서 10명이 생활했었지. 


 50평이라는 말을 들으면 꽤나 넓직하고 쾌적할 것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 방에 남자 3명이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해봐. 참고로 난 신입이라, 나이와 기술 모두 부족했기에 대부분의 잡일은 내가 도맡아 했었어. 50평인데 남자 3명이서 한 방을 쓴 건, 팀장님은 독방을 썻기 때문이야. 모두가 공평하게 했었다면 뭐, 나름 쾌적한 생활이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여기도 나름의 계급과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었거든.


 게다가 남자 10명이서 사용하다보니, 바쁜 일이 끝나더라도 항상 막내로서 각종 청소를 도맡아서 해야했어. 그렇게 일과 뒤의 또다른 일과가 끝나고 나면 약 8시쯤 됐던 거 같아. 참, 일과시간을 말 안해줬었네. 매일 아침 오전 5시 30분에 기상해서, 6시까지 팀장님의 봉고차에 탑승하고 공사장에 도착하면 6시 30분이었어. 아침에 각종 서류처리와 아침조회를 마치면 7시 30분쯤 됐었고, 필요한 물품들을 사무실에서 수령 후 작업장에 들어가면 8시 30분쯤 됐었지. 


 작업장까지 가는 시간이 약 1시간 정도 걸렸던 건, 워낙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는 곳이기에 매일 승인 받아야 하는 것들이 꽤 많았고, 차량으로는 출입할 수가 없었기에 전부 걸어서 갔거든. 집합장소에서 꽤 떨어져 있었어. 작업장에 도착했을 때면 항상 땀 범벅이 되어 있었지.


 그 이후엔 다들 생각할 수 있을거야. 오전 일과가 끝나면 집합장소로 가서, 점심을 먹고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져. 그리고는 다시 오후 일과가 시작되지. 일과를 다 마치면 약 오후 6시 정도였고, 팀장님의 봉고차를 가고 숙소에 돌아가면 6시 30분이였던 거지.




#공사장, 고된 노동의 뒤에는...


 숙소에 돌아온 팀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난 그때 참 많은 걸 느꼈어. 대부분 자기 본능에 충실했거든.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었어. 술과 담배를 하는 팀원들, 담배를 입에 문 채 컴퓨터게임을 하는 팀원들, 누워서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며 곧 잠든느 팀원들. 부류를 세 가지로 했지만 사실 부류라 할 것도 없어. 그저 다들 일과 뒤에 자기발전보다는 자기만족을 택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서 하루 하루를 허투루 보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그리고 지금껏 그런사람들을 곁에 두고, 서로 동기부여를 하면서 나날들을 보내려 노력했지. 그렇다고 내가 아주 성실한 사람은 아냐. 단지 성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거지. 나도 가끔은 하고싶은 걸 하곤 했어. 술을 마시거나 피시방을 가서 실컷 게임을 하기도 했고. 그래도 삶을 제대로 살고 싶다는 의지는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 왔어.


 그랬던 내게 이런 환경은 처음으로 마주하는 아주 낯선 환경이었던 거야. 하루 일과에 지친 팀원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고, 그리고 거기서 나름의 위안과 만족을 얻어. 그리고 다음 날 일과를 가기 위한 에너지를 충하지. 여기서 에너지는 육체적 에너지 보다는 정신적 에너지를 말해. 고된 강도의 일과에 따라오는 스트레스를 제각기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풀어내지 않으면 다음 날 일 할때는 죽고싶을 정도로 힘들테니까.


 그 때 처음으로 실감했던 것 같아. 첫째로 돈을 버는 게 정말 힘든거구나라는 사실. 둘째로 생계유지를 하면서 하는 자기계발이란 건 더더욱 힘든거구나 라는 사실을 말야. 자기 몸과 미래를 오롯이 책임진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무거운 건지를 조금은 알 것 같았어. 삶을 살아간다는 건 정말 힘든 것이고, 항상 마음을 붙들지 않으면 어느 순간 망가지겠구나 라고 느꼈어. 그래서 난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후에 독서실을 등록했어. 결과가 어땠을 것 같아? 작심 삼일이란 말이 생각나지 않아? 부끄럽지만 사실이야.


 독서실을 가도 졸기 일쑤였어. 당연히 너무 피곤해서였지. 변명을 대자면 그 이유 딱 하나였어. 더 이상의 문장은 필요가 없을 거 같네. 12시간 동안 밖에서 일하다 들어와서 씻고 독서실을 가면 졸음이 쏟아졌어. 잠깐만 엎드렸다 일어나자하면서 엎드리면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어.


 자고 일어나니 밤 10시, 곧 숙소에 돌아가서 자야할 시간인 게지. 공부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 나는 독서실 앞의 놀이터 의자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곤 했어. 맥주 맛이 어찌나 좋던지... 고된 노동 뒤에 오는 맥주라는 건 정말이지 가뭄난 메마른 땅에 한 방울 단비같았어. 내 갈라진 목을 끝내주게 시원한 맥주가 촉촉하게 만들어주더라. 왜 공사장 아저씨들이 일과 후에 항상 소주, 맥주, 막걸리를 달고 사는지 금방 공감이 갔어.


 일주일 정도가 지나니까 나도 어느새 일과 후에 맥주 한 캔을 마시는 버릇이 생겼더라. 절대 하지 말아야지. 날 만족시킬 시간을 내 미래를 개척하는데 쓰겠다는 굳은 다짐이 맥주 한 캔에 흔적없이 녹아버렸어. 맥주가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였지. 맥주를 마시면 내 하루의 모든 스트레스와 고됨이 쏴 - 아 씻겨내려간다는 듯, 어느덧 내 하루 일과의 마침표가 되어 있더라. 그 때 생각했어. 드디어 떠날 때가 됬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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